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화 이글스 (문단 편집) === 드래프트 잔혹사 === 1차 드래프트에서 가장 이득을 보지 못한 팀중 한팀이며, [[성시헌|1차 지명자를 1년 만에 방출한 전력이 있을 정도]]로 부실한 연고지 팜으로 유명하다. 암흑기가 시작되자 신생팀 창단이 연이어 일어나는 바람에 드래프트 픽에서 많은 손해를 보기도 했다. 대전팜은 숫적으로 크게 열세였으며 질적으로도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를 제외하면 나머지 팜들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기에 고졸우선지명과 연고지역 1차 지명 제도를 폐지하는데 앞장선 구단이며 결국 고졸우선지명은 1999년 지명을 마지막으로 폐지, 연고 1차 지명도 2009년 드래프트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가 부활했지만 22년부터 다시 폐지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고졸우선지명과 1차지명이 폐지된 그 해에 한화의 팜 내부지역에서 그 해의 최대어가 배출되었다는 점. 고졸우선지명의 경우에는 [[조규수]], [[마일영]]이 나란히 나왔고 한화의 스카우트진들은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화는 [[조규수]]를 택했다. 재미있는 건 이 [[조규수]]를 2010년에 두산에 트레이드 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일영]]을 트레이드로 영입해서 결국 두 선수 모두 한화에 몸을 담아보게 되었다. 1차지명의 경우에는 2010년에 연고 고교인 천안북일고에서 [[신정락]]이 배출되었는데(고교 졸업은 2006년) 2010년 신인지명부터 1차지명이 폐지되었기에 전체 1번으로 [[LG 트윈스]]가 신정락을 지명했고 한화는 1라운드 4번으로 북일고 투수 [[김용주(야구선수)|김용주]]를 지명하였다. 22년도 역시 북일고의 1학년들 중 투수 최대어이자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손꼽힐 수준의 투수 유망주로 기대되는 [[심준석]]의 뒤에 지명받을만한 타자 최대어인 양재호가 있어, 심준석이 메이저로 직행하고 한화가 혹여나 꼴지를 하지 않으면 역사가 반복될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팜에서 특이점으로는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가 팜 내에 좋은 선수가 없다는 1차적인 이유에 한화재단에서 운영하는 학교라는 정치적인 이유까지 겹쳐 북일고 선수가 지명되는 선수가 많다는 점이다. 2010년대 들어서 이러한 현상이 더 심화돼서 1차지명 부활 후 비 북일출신 1차지명이 청주고 출신 [[황영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그에 비해 [[이상군]], [[김태균]], [[안영명]], [[유원상]] 정도를 제외하면 꾸준히 픽한 북일고에서 배출해낸 주전급 선수가 그다지 없기에 반발도 많다. 이 때문에 [[빙그레 이글스|빙그레]] 시절부터 북일파와 비북일파(대전고, 공주고, 세광고, 청주고(청주기공고) 등) 간의 갈등이 팀 내에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해 애초에 근거가 빈약하다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애초에 빙그레는 창단 당시 대구 팜에서 많은 선수들을 뽑았다. 당장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중심이었던 [[이강돈]], [[이정훈(1963)|이정훈]] 등이 대구경북 출신이며, [[유승안]]은 서울, [[고원부]]는 재일교포 출신이다. 또한 영구결번 4인방과 팬들 사이에서 준 영구결번 취급받는 [[구대성]] 모두 충청권 출신이지만, 북일고 출신은 [[김태균]] 한 명이다.] * 2000년대 중후반 드래프트 과거의 신인 픽의 방침은 하드웨어. 유난히 선수가 가진 하드웨어에 집중하여 뽑는 경향이 강했으며 조금이라도 애매하면 무조건 떡대를 보고 픽하곤 했다. 제일 대표적인 케이스가 [[오승환]]을 거르고 뽑았던 [[양훈]]. 투수진은 물론이고 야수진도 대체로 떡대를 우선적으로 봤는데 이 덕분에 떡대가 있기 좋은 코너 포지션의 거포 유망주는 항상 쌓아놓고 있었고, 10년대 후반 들어 팀 타선이 심각하게 막장화가 되기 이전까지 팀 내 주포역할을 해줄 장타능력을 갖춘 타자는 항상 한명씩은 데리고 있었다. 19 시즌 이전 최악의 시즌이었던 2010년 시즌에도 [[최진행]]이 타자진에서 버티고 있었을 정도. 반대로 야구 센스와 스킬을 장기로 삼는 작은 쌕쌕이는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 때문에 테이블 세터가 될 만한 타자와 사이즈가 작아야 하는 내야 센터 라인의 선수들은 꾸준히 기근을 겪었다. 99년대 후반부터 장기간 1번타자로 뛰었던 이영우조차도 쌕쌕이 타입은 아니였다. 이영우가 군 입대후 커리어가 꺽인 뒤 강동우가 이 자리를 메꾸다가 결국 2013 시즌 이후 [[정근우]], [[이용규]]를 FA로 영입하면서 메꿨다. 이상할정도로 포수 자원을 수집하는 경향도 있다. [[정범모]], [[한승택]], [[이준수(야구선수)|이준수]], [[이희근]], [[박노민]], [[엄태용]] 등. 그러나 지명 빈도와 투자에 비하면 육성능력 부족으로 결과물은 그러 그랬고 결국 포수도 트레이드로 틈을 메꿨다. 여기까지가 과거의 00년대 시즌 중반까지의 일반적인 픽 경향. 04년 이후 09 시즌까지 신인 픽을 굉장히 개판으로 해왔으며 한화 이글스의 가장 큰 몰락 원인을 한가지만 꼽으라면 신인 드래프트를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04년에 한화는 야구단에 들어가는 돈을 줄이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사용했는데, 신인 드래프트에서 뽑는 선수를 줄이는게 그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였다. 04년 5명 지명을 시작으로 하위 지명에서 대학에 진학이 결정된 선수를 뽑는 등 정식 계약을 해야하는 선수의 숫자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육성능력 부족이 겹치면서 몰락이 시작됐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지역 안배를 해준다고 지역출신에 실링이 떨어지는 선수들을 뽑았다가 역시나 별 성과를 못 내고 은퇴하는 것을 반복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의 첫 번째 실책은 김인식 감독의 재임기간, 혹사로 매년 필승계투 한두명을 갈아먹으면서 시즌을 보냈던 시절 그 갈아먹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투수픽에 픽을 집중했다는 것이다. 2006년 드래프트에는 1차 포함 상위 6명 중 4지명 [[정범모]]를 제외하면 4명이 투수였으며 2007년은 1차 포함 상위 7명 중 4명을, 2008년에도 6명 중 4명이었다. 이러한 발픽의 최고 절정은 2009년 지명이었다. 이 해에 7명 중 5명이 투수, 대졸로 상위를 다 채우는 노골적인 즉전감 불펜 수집을 시도한 것. 프로야구에 대해 조금만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00년대 이후로는 대졸 선수는 고교 때 프로 진출에 실패하거나 하위 지명을 받은 선수들이 차선책으로 고려하는 경향이 강해서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전부 프로에 와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화는 아예 작정하고 1명을 제외하고 모두 대졸로만 채워버렸다. 게다가 하위지명에서 포텐을 보고 선수들을 데려오는것도 아니고 픽을 포기해버렸다. 결국 그해 지명자들 중 장기간 1군에서 살아남은 선수는 유일한 고졸 [[장민재]]였다는 것을 보면 이 시기의 근시안적인 픽이 팀에 얼마나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해였다. 근본적으로 근시안적으로 뽑기도 했지만, 육성 파트에서도 장기간 투수를 집중적으로 모아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투수를 키워내는데 실패했다. [[김혁민]]이나 [[유원상]], [[허유강]]과 [[황재규]] 등 짧은 기간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도 존재하긴 했으나 몇몇은 가능성만 보여줬고 몇몇은 [[김인식|재활의 신이라고 불리는 어떤 킬감독]]에 의해 재활해야 할 신세가 되었다. 그나마 이런 투수들도 몇 되지 않았고, [[최진호(1984)|최진호]]나 [[윤기호]], [[구본범]]처럼 아주 [[한화 이글스/2군|2군]]에서 버로우를 해버린 케이스가 더 많았다. 이 시기에 야수쪽에 픽을 많이 쓰지도 않았는데, 그나마도 [[정범모]], 최연오, [[이희근]] 등 포수에 집중하면서 뽑았다. 1차 지명인 [[박상규(야구선수)|박상규]]와 [[김회성]], 그리고 2차 지명자인 [[오선진]]과 [[김강]] 전부 포함해 '''단 4명'''만이 김인식 감독 기간에 상위에서 제대로 픽한 야수자원이었다. 박상규와 김회성이 붕괴한 지역 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픽한 자원임을 고려하면 정말로 제대로 상위에서 지명한 아수는 김강과 오선진 단 두사람인 것. 하위 픽을 한 선수도 몇 명 없었으며 당연히 오래 가지 못해 방출되었다. 이 이외의 자원은 신고선수나 영입선수로 매꿨다. 이렇게 굉장히 투수에 치우친 지명을 몇 년간 이어간 결과 당연히 신인 야수에서 새롭게 나오는 자원이 '''증발'''해버렸으며 결국 야수 부족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2010년 시즌 중에 2군에서 몇 명의 야수가 부상으로 경기에서 빠지자 경기에 나갈 야수가 부족한 처참한 상태를 맞이하게 됐다. * 2010년대 초반 한화 프런트는 2010년에 들어서야 문제점을 인식하고 허둥지둥 드랩의 방향성을 수정하게 된다. 10드래프트에서 상위 지명으로 2지명 [[김재우(1991)|김재우]]를 지명하고 4지명 [[이상훈(1987)|이상훈]]을 데려오면서 그동안 픽이 없었던 중견 자원을 픽했으며 야수자원이 대폭 모자르게 되자 이러한 경향을 버리고 10명을 꽉 채워서 지명한 뒤에 모두 계약했다. 또한 야수자원의 픽도 상당히 많았는데 2011년에는 포수 [[나성용]], 유격수 [[강경학]], 1루수 [[김용호(야구)|김용호]], 외야수 [[임신호]]와 [[오준혁]]에 투수로 픽했지만 이후 외야수로 키울 예정인 문재현까지 총 6명의 야수를 뽑았지만, 트레이드 된 오준혁이나 잦은 부상으로 재능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강경학을 제외하면 전부 그저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하였다. 2012년에는 아예 전체 1픽을 최대어 신일고 내야수 [[하주석]]에 사용하면서 드래프트 역사상 최초 야수 1순위 지명을 사용했다. 이 시기에는 전체적으로 그동안의 떡대와 하드웨어를 보고 픽하는 경향을 버리고 쌕쌕이 위주로 픽을 하였다. [[양성우(야구선수)|양성우]]같은 선수들이 대표적. 10지명에서 1차 지명으로 라이트팬 조차도 프로에서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 평가받던 북일고의 에이스 [[김용주(야구선수)|김용주]]를 1지명하는 등 지역 안배를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임기영, 이태양, 오준혁 등 재능있는 선수들을 한 해에 하나 둘 씩은 찾아내곤 했다. 이렇게 오랜 드래프트에서의 삽질을 마무리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그러나 운도 한화의 편이 아니였다. 하필 팀이 최악의 암흑기를 겪고 있던 그 때 신생팀들이 창단되기 시작한 것이다. 상기에 언급된 하주석도 NC가 우선지명으로 두명의 선수를 데려가고 남은 선수였고, 1년뒤에는 지역고교인 북일고의 에이스이자 전국구 에이스인 [[윤호솔|윤형배]]를 지명할 수 있는 기회가 [[NC 다이노스]]의 우선 지명으로 인해 날아갔고 1차지명 제도가 부활한 첫 해인 2013년 6월 발표된 10번째 구단 [[kt wiz]]의 우선 지명 선수 두 명 중에서도 당초 전문가들의 예상과 달리 북일고 류희운이 예상을 깨고 포함되며 한화 이글스는 [[멘탈붕괴|멘붕]]. 충청팜에서 1차로 지명할 만한 선수가 [[류희운]]뿐이었다. 이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2014년에도 [[kt wiz]]가 우선지명으로 청주고 투수이자 조선족이라 군면제가 기존으로 장착되어 있는 [[주권(야구선수)|주권]]을 지명하여 또 다시 연고지 최대어를 뺏겼다. 그나마 북일고 [[김범수(야구선수)|김범수]]가 있어 2013년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2년 연속 연고지 탑급 유망주를 뺏겼으니 한화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판. 2009년부터 팀 성적이 바닥을 기고 있는데 연이은 신생팀 창단으로 인해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적은 [[유창식]] 단 한 번 뿐이다.[* 여담으로 유창식 이후 한화가 온전히 '''1라운드 1픽'''을 행사한 선수는 202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선택한 [[김서현]]이다. 허나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지의 야구 팬들은 이런 전후사정은 알바 아니라는 듯이 한화가 2020년대 들어 전면 드래프트가 시행되며 드디어 드래프트에서 이득을 보기 시작하자 "공부 잘하면 서울대에 가고, 야구 잘하면 한화에 간다" 는 식의 원색적인 조롱만 하고 있다. 하지만 1라운드 1픽을 행사하지 못했더라도 한화가 지명할 시기엔 이미 Z자 드래프트를 시행하고 있어서 그래도 다른 팀들보다는 좋은 선수들을 많이 가져갔는데 그럼에도 하위권을 면치 못 하는건 구단 자체의 잘못이므로 단순히 이 것만을 탓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많다.] 게다가 [[김응룡]]-[[김성근]] 감독 시기에 한 해에 한두명씩 주웠던 유망한 어린 선수들이 이 시기에 다수 유출되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건 각 감독의 항목으로 넘기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유출들이 10년대 후반과 20년대 초반 타선 몰락의 원인이 되었다. 거기에 하필 [[김원석(야구선수)|김원석]]같이 재능은 보였으나 사고를 치고 은퇴한 선수들이 있었다는 점도 불운 중 하나였다. 원인이 뭐였던 간에 10년대 초반의 픽은 결과적으로 몇년에 걸쳐 실패를 겪었고, 이 시기에 배출한 주전은 하주석과 이태양 단 두명이며 이태양은 18년 이후로 하락세 후 트레이드, 하주석도 기대치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랜 기간 2군에서 육성자원으로 분류되면서 팀에 잔류하고 있던 어린 투수들이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한 점이 위안거리. * 2015 드래프트 이후 04년~09년, 10년~15년까지의 두 시기에 이어 세번째 시기는 [[김민우(1995)|김민우]]-[[김범수(야구선수)|김범수]]라는 두 선발 유망주[* 2023 시즌 결론적으로 김민우는 부상을 당했으나 지난 3시즌간 한화의 토종 1선발 노릇을 했고, 김범수는 2년 연속 두자릿수 홀드를 기록하며 좌완 필승조로 스텝업에 성공했다.]를 동시에 배출해낸 15 드래프트를 시작으로 16 시즌 이후라고 볼 수 있다. 15 시즌만 하더라도 지역안배를 위주로 드래프트를 했으나 이 이후로는 기존 드랩 기조를 완전히 버렸다. 지역안배를 완전히 버렸으며 투수진도 하드웨어와 제구를 중점으로 보던 것에서 벗어나 구위를 위주로 보고 있으며, 야수의 경우에는 매년 특정 포지션의 선수를 보강하는 식으로 픽하고 있다. 이 이후의 신인 픽들은 전처럼 발픽은 절대로 아니고, 아직 온전히 결과가 나올 정도로 지나지는 않았으나 조금씩 결과가 나오고 있다. 투수쪽의 경우 충분히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꾸준히 한두명씩 패전처리라도 할만한 선수를 뽑아내면서 픽도 꾸준히 평타를 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육성 시스템도 마침 제대로 잡히기 시작하여 투수진이 무너진 09년 이후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투수층이 생기고 있다. 특히 18년도 리그 정상급 불펜이었던 [[박상원(야구선수)|박상원]]을 제외하면 정상급 퍼포먼스를 보여준 선수는 없으나 고만고만하게 1군에서 버텨줄만한 선수들은 정말 오랫만에 다수 보유하게 되었으며, 돌아가면서 필승조 역할을 하고 있다. 대다수가 어린 투수들이라 성장이 기대되는 점이 고무적. 여기에 그렇게 운이 없던 한화에게 1차 지명에서 [[문동주]]를 얻는 행운이 따랐고, 때마침 전국지명이 폐지되면서 유창식 이후 처음으로 전체 1번으로 [[김서현]]을 지명해 160km를 던질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는 재능을 가진 투수를 얻게 되었으며[* 문동주는 '''토종 선수 최초로''' [[2023년]]에 160km를 던졌다.], 2024년 드래프트에서는 [[장현석]]이 해외진출을 선언해 지명하지 못했지만 대신 좌완 최대어인 [[황준서]]를 지명할 가능성이 높아 투수진의 미래는 밝은 편이다. 야수진은 아직도 애매하다. 18년에 역대 한화 내야 센터라인 신인 중 가장 좋은 페이스로 선수 커리어를 시작한 [[정은원]]을 뽑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그 외에는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였으며 기대치가 있어 보이는 선수들은 전부 큰 결점을 보이면서 1군에 적응하는데 실패했고, 특히 장타력이 있는 타자를 단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렇게 야수들을 배출해내지 못한 것이 20 시즌 야수진 대붕괴의 원인. 이 때문에 18 시즌 정도부터 전조가 보이기 시작하자 과감하게 과감하게 상위 드랩권을 전부 야수에 몰빵한 19 드래프트를 시작으로 장타력을 갖춘 야수들의 수집에 들어갔다. 시작은 상당히 좋은 편으로 이런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되어 2군 북부리그에서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리고 그 2019 드래프트에서 뽑은 [[노시환]]의 기량이 만개했다. 2022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문현빈]] 역시 얼리픽이라는 평가를 뒤엎고 KBO 리그 역대 7호 고졸 신인 데뷔 시즌 100안타를 기록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